[일반] 생명의 말씀 -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연중 제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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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보 제2237호 2019년 7월 7일(다해) 연중 제1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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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정순택 베드로 주교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오늘 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가장 마지막 장의 한 부
분입니다. 바빌론 유배에서 막 돌아온 유대민족에게 ‘이사
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배를
마치고 고국 땅에로의 귀환은 유대민족에게 하느님의 승리
로 이해되었지만, 막상 돌아와서 마주한 고국 땅의 실상은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성전은 무너져 있었고, 성도 예루
살렘은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언자를 통
해 하느님께서는 희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기뻐하
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
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이사
66,12)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
도인이라면, 단순히 이 세상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신앙
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야말로 이 힘든 세
상을 돌파해 가는 참된 열쇠임을 믿고, 그것을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2독서
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
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라고 말합니다.
복음 말씀은 일흔두 제자를 선교 파견하시는 대목을 들
려줍니다. ‘일흔둘’이라는 숫자는 창세기 ‘노아의 홍수’ 이후
그의 세 아들을 통해 불어난 노아의 자손들의 숫자인데, 이
들을 통해 온 세상에 민족들이 갈라져 나갔다고 하여, ‘일흔
두 제자의 파견’은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한다는 의미가 담
겨있습니다.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복음의 전도
사입니다. 교회가 오늘 복음을 들려주는 까닭은, 우리들도
복음 선포의 사도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생명을 만난 사
람들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살이에 지친 내 마음에 평화를
구하기 위해 성당에 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힘든 세
상을 하느님의 평화로 가꾸기 위해 파견된 사도들입니다.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이사 66,13) 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
지리라’(이사 66,14) 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용기를 길어내야
합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
다’(갈라 6,15)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의 외형적인
기준으로 참된 행복을 재단하지 않으며, ‘새 창조만이 중
요할 따름’(갈라 6,15)인 하느님 안에서 거듭 태어나 이 세상
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꾼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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