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생명의 말씀 -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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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주보 제2224호 2019년 4월 7일(다해) 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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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구요비 욥 주교 |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만나면
서 당신이 자비롭고 의로운 재판관이심을 계시하십니다.
이는 율법학자들이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질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두 차례나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
엇인가 쓰시며’(요한 8,6-8 참조) 그 옛날 시나이 산에서 당신
손가락으로 율법을 쓰신(탈출 31,18 참조) 하느님의 모습을 재
현하십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돌로 쳐라!’라고
명령하신다면 이는 ‘나는 세상을 심판하려고 온 것이 아니
라 세상을 구원하려고 왔다’(요한 3,17 참조)라는 평소의 가르
침과 행동에 위배됩니다. 또한 ‘이 여인에게 죄가 없으니
풀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면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는 당신의 사
명에 거스르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요한 8,7) 죄인들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죄인을 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율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율
법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가거라. 그리고 이
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예수님은 죄를 단죄
하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단죄하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양심의 지성소(至聖所)로 돌아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의로워지라는 은총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한국 법조계의 전설이신 ‘사도법관’
김홍섭(바오로) 판사님이 떠오릅니다. 이분의 위대함은 1950
년~60년대에 사형수들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실정법(實定
法)과 하느님의 법이 담겨 있는 자연법(自然法) 사이에서 신앙
인으로서 깊이 고뇌하며 판결하던 구도자적인 삶에서 비롯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
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의 고귀한 사명은 사회구성원들의 인간적인 이익과
여론에 부합하는 실정법적인 차원의 지침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理性)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하
느님의 영원법인 자연법을 수호하고 구체화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여성과 임산부(姙産婦)의 자
기결정권과 태아(胎兒)의 생명권(生命權) 중 어느 것이 자연법
에 더 부합한지는 우리 모두에게 불문가지(不問可知)의 보편
적인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태아는 산모와는 별개로 존중
받아야 할 고귀한 생명입니다. 아무쪼록 헌법재판관 여러
분의 지혜로운 판결을 간청하며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판
결이 우리 모두에게 빛을 비추어 주기를 비는 간절한 마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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