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생명의 말씀 - 하늘과 땅 사이에 (사순제2주일)
본문
서울주보 제2221호 2019년 3월 17일(다해) 사순 제2주일
생명의 말씀
하늘과 땅 사이에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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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변모.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산에 오른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합니다. 루카복음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변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단지 ‘다른’ 모습으로, 이전에 예수님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변하셨다는 것을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중에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변모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
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성경에서 전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모세는 탈출
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체험을 이끈 예언
자이며 유일하게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던 인물
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미래에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
게 전하기 위해 보낼 예언자로 소개됩니다. 엘리야는 우상
이었던 바알의 사제들에 맞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낸 예
언자이면서 바람에 실려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입니다.
이 사건의 마지막에 전해지는 것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
리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와 비슷한 표현을 예수님의 세례에서도 찾을 수 있
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루카 3,22)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복음서 안에서 중
요한 축(軸)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표현하는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복음서
의 시작과 중간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냅니다. 또한 영광스러
운 변모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받으실 영광을 미리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영광이 결정적으로 드러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그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세례와 영광스러운 변모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서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서 예수 그리스도
를 계시하는 사건이면서 복음서 안에서 명시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표현합니다. 변모 사건을 체험한 제자
들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
을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나 거룩함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것을 묘사하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베드로 사도의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변모가 얼마나 황홀하고 찬란한 것이었는지 엿보게 됩니
다. 그저 그렇게 머물고 싶고 다른 모든 것들을 잊게 만듭
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원하는 사회에서 종교에
서 말하는 거룩함이나 영광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시편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너희
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머물러 있기를, 머리보다 먼저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맛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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