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교황 프란치스코의 2023년 6월 기도지향 성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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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교황 프란치스코의 기도지향 성찰문 - 김우중 신부님
2023년 6월 기도지향: 고문의 폐지
- 국제 공동체가 고문의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 피해자
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도록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문은 대죄이며, 매우 심각한 죄악임을 강조하십
니다. 교황님께서는 “잔인함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끝나지 않았
습니다. 지금도 많은 수감자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이 일어나는 많은 곳에서 똑같은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현실을 당신의 어깨에 메고 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i]라고 말씀하십니다.
서품을 앞둔 예수회 수사들은 한 달간 아루페 먼쓰(Arrupe Month)라
는 시간을 갖습니다. 아루페 먼쓰에 대한 아이디어는 전 예수회 총장이
었던 베드로 아루페 신부님의 제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루페 신부님은 신학기 수사들이 예수회 사제직의 의미에 대해 더 깊
이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저와 제 동기 신부들은 2018년 여름
에 한국, 중국, 일본 관구의 신학기 수사들과 함께 아루페 먼쓰를 가졌
습니다.
이때 각 국가별로 의미 있는 영화를 시청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있었는
데, 한국 영화로는 <1987>을 보았습니다.
<1987>은 1987년 1월에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입니다. 고문을 가했던 대공수사관들
과 경찰 수뇌부는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였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의 폭로로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됩니다. 수사들은
영화를 보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불과 30년 전, 저희
수사들도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우리 세대의 이야기였던 것
입니다.
그러나 고문 가해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국가를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작은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권력이라는
국가의 체계가 그것을 용인하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한 복음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
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한 11,50) 이 말은 대사제
카야파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밀 때 했던 말입니다.
1997년 UN은 6월 26일을 국제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로 선포하였
고, 그 피해자들을 지원해오고 있습니다.
2020년 바로 이날, UN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고문이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피해자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가해자를 비롯한 고문이
발생하는 모든 국가와 체계를 훼손시킨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주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
여서는 안 되며, 고문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한다
고 강조합니다.[ii]
UN 사무총장의 말처럼, 고문의 가해자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은 그것을 용인해주는 시스템이나 집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카야파의
말처럼 한 사람이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이 좋다는 논리는 예수님 시대
뿐만 아니라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 편에 서계십니다. 한 사람을 위해 당신
의 목숨을 내놓으시는 분입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
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루카 15,4)
사실 우리 안에도 이른바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집단
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그 희생의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면?
한국 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분들은 고문을 받
으며 돌아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지켜낸 민주주의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고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악이 만연하다는 증거입니다. 교황님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이러한 현실을 당신 어깨에 메고 십자
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고문은 2천 년 전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아래 성경 말씀과 성찰 질문은 편집 방향에 따라 포함시키셔도 되고
안 하셔도 됩니다.)
성경 말씀: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
다.” (마태 26,52)
성찰 질문: 고문은 심각한 죄이지만, 그것을 용인해주는 조직이나 집단
안에서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조직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
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예수님
이시라면 그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셨을까요?
[i] https://www.youtube.com/watch?v=qdDdqPAVWQg
[ii]https://www.vaticannews.va/en/world/news/2020-06/united-nations-
day-torture-victims-human-righ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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