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2014년 4월 기도지향 해설
본문
교황님의 2014년 4월 기도 지향
일반 기도지향
생태 환경과 정의 : 모든 나라의 정부가 피조물을 보호하고 천연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도록 기도합시다.
완연한 봄입니다. 식물들이 자라는 계절이죠. 바로 인간을 창조하셔서 “에덴 동산을 가꾸고 보전하도록”(창세 2,15) 피조물을 인간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기억할 때입니다. 작년 6월 5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일반 알현 중에 이런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피조물을 진정으로 ‘가꾸고 보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피조물을 남용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까?”
교황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피조물을 가꾸고 보전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역사의 시초에만 내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내리신 지침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계획에 속하는 것으로, 세상을 모든 이를 위한 동산, 모든 이가 살아가는 곳이 되도록 만들면서 이 세상을 책임감 있게 키워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지배와 소유를 자랑하며 조작과 착취에 몰두하여 자연을 ‘보전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우리가 세심하게 보살펴야 하는 거저 받은 선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을 대하면서 경탄,관상, 경청의 태도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환경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주제로, 교황님께서는 이에 대하여 이미 자주 언급을 하셨습니다. 특히 교황 즉위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리에게 ‘피조물의 보호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께서는 “모든 것이 우리의 보호에 맡겨져 있고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되새기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피조물의‘보호자’, 자연 안에 새겨진 하느님 계획의 보호자, 인간의 보호자와 자연의 보호자가 되도록 합시다. 이 세상이 나아가는 길에 파괴와 죽음의 징조가 따르지 않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피조물을 존중하고 보전하며, 모든 이에게 관심을 쏟고, 낭비의 문화를 버리고 연대와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려는 모든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하신 교황님의 초대에 대해 우리는 기도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 삶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응답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성찰 : 우리는 피조물을 보호하고 천연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요?
성경 : 로마 8,19-22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선교 기도지향
병자들의 희망 : 부활하신 주님께서 고통과 질병으로 시련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채워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지난 2월 11일은 제22차 세계 병자의 날이었습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세계 병자의 날을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셨는데 이 담화문에서 교황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병자 여러분, 교회는 고통 받으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특별히 현존하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고통 곁에, 그리고 좀 더 정확히는 우리의 고통 안에 그리스도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고통을 짊어지시고 그 의미를 밝혀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셨을 때, 그분께서는 고통의 외로움을 물리치시고 그 어둠을 밝혀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신비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신비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하느님 사랑의 계획 안에서는 고통의 밤마저 부활의 빛에 굴복하기 때문에 희망이 생겨나고,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분과 하나 되어 모든 고난에 맞설 수 있게 해 주는 용기가 솟아납니다.”
사실 고통은 항상 겪기 힘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겪을 때마다 “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의 의미는 참 하느님이자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부활을 통해서만 비로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이 질병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질병과 고통을 몸소 짊어지심으로써 이를 변화시키시고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질병과 고통은 더 이상 최종 선고가 아니기에 풍요로운 새 삶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에 질병과 고통은 변화되어 더 이상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고통은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안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시어 큰 고통을 겪으신 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고통과 질병으로 시련을 겪는 모든 병자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시도록 우리 모두 교황님과 함께 열심히 기도합시다.
성찰 : 여러분은 본인이 겪는 고통으로부터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성경 : 콜로 1,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