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무장님께 서운 했으나 저의 잘못도 부분적으로 있었던 일
베드로
2013-09-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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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형제 자매님 행복하십시요. 저는 황의선 베드로 입니다.
여기 자유 게시판을 이용하여 뛰우는 이글은 저 자신의 부덕한 탓에서 파생 되었던 일련의 아품이
한국 천주교회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 나누었을 때, 어떤 작은 변화를 가져올 물결이 있었으면 하여 담아 봅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지만 청춘의 날들과 또 지금의 여러 사업과 꿈의 좌절로 힘겨운 생활 속에 어쩌다 조당중 입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저의 아들이 등촌1동에서 복사를 하고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면서 교적정리를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7년간 주일이면 군 성당이나 부대 지역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오늘 전화가 왔는데 결혼을 하고자 하며 꼭 등촌1동 성당에서 결혼하기를 꿈꾸어 왔었다는 말을 듣고 그래 그럴것이다.하였습니다. 어린이가 한겨울 새벽 미사에 복사를 책임지고 나온다는 것은 저도 그 과정을 거친 사람으로 이해가 되고 마음의 고향 아니 어린 영혼의 고향으로 남는 성당의 감실 앞 무릅끓은 자신의 모습!
내가 성인이 되어 느꼈던 어린날의 내고향 성당이었읍을 잘 알겠더군요. 청년은 아주 멀리 군대에 있어도 어린날 주님과 함께하였던 고향의 성당을 잊지 못하는 법 이겠지요, 복사준비를 하다가 수녀님의 방구소리를 듣고 킥킥대며 웃었던 날들과 신부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착각속에서 살았던 유년의 날들은 영원히 잊지 못 할 추억이며 더 없는 삶의 보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녀석이 고향을 찾아 교적을 찾으니 거주자 불명으로 되어있어으니 망연자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군대생활을 하면 그저 신앙을 지키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주일이면 미사에 참여하고 살았는데 교적이 없네요 하고 말을 듣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 했을까요? 아버지는 낭감했습니다. " 이일을 어쩐다 아니 성당에 안 나온다고 올드 신자들을 이렇게 대하나 친절하게 안내 해주면 안될까? 공중분해 된 교적을 찾을 수 없지는 않겠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안내자분이 "거주지 불명 처리자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지금껏 교회를 나오지 못 하신분들을 모아 놓았거든요?"
처음부터 이렇게 설명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사무장님을 바꿔 달라고 해 입씨름 끝에 이 거주지 불명처리자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성당에 사무를 보시는 분이라면 어차피 대민 써비스이지요 좀 친절하고 상냥하며 꼼꼼히 안내하지 못하고 어딘가 권위가 있는 말투를 느꼈다면 동사무소 직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교회는 신자든 불신자든 주님의 집이지 교권의 권력이나 행정의 집이 아님을 우리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부산 중앙동 성당에서 저의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당의 확장공사를 하면서 공사비용지출이 많았고 했으니 형제님도 교적을 이기에 두면 8개월 후에야 결혼 대관료를 현재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해드린다고요 ㅋㅋㅋㅋ 등촌1동 성전건립 헌금을 찟어지는 가난속에서 나름 모아낸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우리가 조당의 신자이던 현재 교인이던 교적에 없다하여 냉냉한 답변을 주거나 사무적 언사로 주인을 대하는 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는 너와 나의 것도 아니요 불신앙인들의 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집이란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좀 사무적인 언사가 권위적으로 들릴 수 도 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언제나 희생과 봉사와 헌신적 무장없이 교회의 행정일을 보거나 사목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위선자가 아니겠습니까 저와같이 뻔뻔한 사람도 다정히 대하여,,, 주님의 말씀에 실천하여 앞서가는 분들이 아쉬운 세태입니다. 멀리 떠났던 아들이 교회를 찾았는데 앞뒤없이 교적에 없다고 한다면, 오랜세월 영혼에 담아 두었던 소년시절의 예수님과 만남의 장소였던 꼬마 복사! 봉사활동은 오직 주님만 아시겠지요, 그러하다면 우리들의 사회는 변화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변화는 늘 아름답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썩는 거지요. 저도 언젠가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날을 손꼽아 기대해봅니다. 교적을 옴겨가지 않았다면 거주자 불명 타인 취급하는 소리보다 좀 다른 보관과 안내가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해를 돕자면 만약 아니 예컨데 마을의 청년이 전쟁이나 어떤 굴곡을 격어 오랜세월 떠나있다 돌아온 청년에게 성당에서 타인 취급한다면 영혼의 상처가 될 것입니다. 군대인 여기저기 부대를 옴겨다니는 생활 속에서 그때마다 교적을 옴겨 다녀야 합니까?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겠지요. 모든아들들이 군대가면서 교적을 훈련소로 옴겨갑니까? 그리고 자대배치 받고 또 옴기고 발령 받을 때 마다 교적을 옴겨가는것 그것보다 저는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 할 꺼라 봅니다.
형제 자매님 행복하십시요. 저는 황의선 베드로 입니다.
여기 자유 게시판을 이용하여 뛰우는 이글은 저 자신의 부덕한 탓에서 파생 되었던 일련의 아품이
한국 천주교회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 나누었을 때, 어떤 작은 변화를 가져올 물결이 있었으면 하여 담아 봅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지만 청춘의 날들과 또 지금의 여러 사업과 꿈의 좌절로 힘겨운 생활 속에 어쩌다 조당중 입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저의 아들이 등촌1동에서 복사를 하고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가면서 교적정리를 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7년간 주일이면 군 성당이나 부대 지역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오늘 전화가 왔는데 결혼을 하고자 하며 꼭 등촌1동 성당에서 결혼하기를 꿈꾸어 왔었다는 말을 듣고 그래 그럴것이다.하였습니다. 어린이가 한겨울 새벽 미사에 복사를 책임지고 나온다는 것은 저도 그 과정을 거친 사람으로 이해가 되고 마음의 고향 아니 어린 영혼의 고향으로 남는 성당의 감실 앞 무릅끓은 자신의 모습!
내가 성인이 되어 느꼈던 어린날의 내고향 성당이었읍을 잘 알겠더군요. 청년은 아주 멀리 군대에 있어도 어린날 주님과 함께하였던 고향의 성당을 잊지 못하는 법 이겠지요, 복사준비를 하다가 수녀님의 방구소리를 듣고 킥킥대며 웃었던 날들과 신부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착각속에서 살았던 유년의 날들은 영원히 잊지 못 할 추억이며 더 없는 삶의 보석이 아니겠습니까?
그녀석이 고향을 찾아 교적을 찾으니 거주자 불명으로 되어있어으니 망연자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군대생활을 하면 그저 신앙을 지키며 주님과 함께 하는 삶에 조금도 흔들림 없이 주일이면 미사에 참여하고 살았는데 교적이 없네요 하고 말을 듣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 했을까요? 아버지는 낭감했습니다. " 이일을 어쩐다 아니 성당에 안 나온다고 올드 신자들을 이렇게 대하나 친절하게 안내 해주면 안될까? 공중분해 된 교적을 찾을 수 없지는 않겠지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안내자분이 "거주지 불명 처리자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지금껏 교회를 나오지 못 하신분들을 모아 놓았거든요?"
처음부터 이렇게 설명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난 사무장님을 바꿔 달라고 해 입씨름 끝에 이 거주지 불명처리자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성당에 사무를 보시는 분이라면 어차피 대민 써비스이지요 좀 친절하고 상냥하며 꼼꼼히 안내하지 못하고 어딘가 권위가 있는 말투를 느꼈다면 동사무소 직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교회는 신자든 불신자든 주님의 집이지 교권의 권력이나 행정의 집이 아님을 우리가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부산 중앙동 성당에서 저의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성당의 확장공사를 하면서 공사비용지출이 많았고 했으니 형제님도 교적을 이기에 두면 8개월 후에야 결혼 대관료를 현재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해드린다고요 ㅋㅋㅋㅋ 등촌1동 성전건립 헌금을 찟어지는 가난속에서 나름 모아낸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말은 우리가 조당의 신자이던 현재 교인이던 교적에 없다하여 냉냉한 답변을 주거나 사무적 언사로 주인을 대하는 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는 너와 나의 것도 아니요 불신앙인들의 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의 집이란 분명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좀 사무적인 언사가 권위적으로 들릴 수 도 있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언제나 희생과 봉사와 헌신적 무장없이 교회의 행정일을 보거나 사목활동을 한다면 그것은 위선자가 아니겠습니까 저와같이 뻔뻔한 사람도 다정히 대하여,,, 주님의 말씀에 실천하여 앞서가는 분들이 아쉬운 세태입니다. 멀리 떠났던 아들이 교회를 찾았는데 앞뒤없이 교적에 없다고 한다면, 오랜세월 영혼에 담아 두었던 소년시절의 예수님과 만남의 장소였던 꼬마 복사! 봉사활동은 오직 주님만 아시겠지요, 그러하다면 우리들의 사회는 변화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변화는 늘 아름답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썩는 거지요. 저도 언젠가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날을 손꼽아 기대해봅니다. 교적을 옴겨가지 않았다면 거주자 불명 타인 취급하는 소리보다 좀 다른 보관과 안내가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해를 돕자면 만약 아니 예컨데 마을의 청년이 전쟁이나 어떤 굴곡을 격어 오랜세월 떠나있다 돌아온 청년에게 성당에서 타인 취급한다면 영혼의 상처가 될 것입니다. 군대인 여기저기 부대를 옴겨다니는 생활 속에서 그때마다 교적을 옴겨 다녀야 합니까?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겠지요. 모든아들들이 군대가면서 교적을 훈련소로 옴겨갑니까? 그리고 자대배치 받고 또 옴기고 발령 받을 때 마다 교적을 옴겨가는것 그것보다 저는 신앙을 버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 할 꺼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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