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교황 프란치스코의 2022년 9월 기도지향 성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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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의 2022년 9월 기도지향 성찰문
- 김건동 신부님
사형 제도 폐지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형 제도의 법적 폐지가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국제 엠네스티에 따르면 2018년 7월 현재, 전 세계에서 사형 제도가
법으로 폐지되어 있거나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는 142개국
이고,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는 56개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사형제도는 존재하지만 1997년 이후 실제로 집행된
적이 없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형 제도는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생명을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하여, 사회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가해자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의 기회를
차단하며, 무엇보다도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
다. 그러나 사형 제도는 범죄자를 포함하여,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
의 삶과 사회 정의의 구현이라는 차원을 넓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왜 어떤 잘못이나 범죄를 처벌하는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에 공정함을 기하고,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으며, 죄를 저지
른 사람이 뉘우쳐 개선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사형 제도라는 극한 수단이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는 사형 제도 이외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도 이
를 도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범죄자 개인의 회개와 개선은 사형 제
도 앞에서 거의 무의미하다.
회심한 삶을 살아갈 기회 자체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형이 집행되기 직
전 회개하고 뉘우치며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회심
한 범죄자가 자신의 삶에서 회개의 열매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사라
지고 말 것이다.
사형 제도는 공동체의 평화에 위협이 되는 개인을 희생시켜 공동체
가 안녕을 누리고자 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물론 매우 흉악한 범죄의
피해자들에게는 사형 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
다.
범죄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슬픔의 깊이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해자의 죽음이 피해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지 않을까. 가해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
을,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인격을 지닌 개개인으로 본다면, 공동체의 이
름으로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리스도교의 가치인 사랑과 자비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불문하고
하느님 모상으로서 지닌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
는 것이 오히려 상처의 근본적인 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회칙 “모든 형제들에게”를 통해 사형 제도
의 부당함을 강조하셨다. 우리는 사회의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질서
를 도모하되, 진정으로 치유와 통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사형 제도
외에도 공동체 구성원의 생명을 지켜주는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점이다. 어떤 사유가 되었든 사람의 생명을 인간
이 결정하여 처단하는 것은 생명의 신비를 부정하고 자비의 신비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일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형 제도에 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특별
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죄를 용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사형 제도에 대해 재고해 보았으면 한
다.
단순히 이성적인 논의만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
한 선택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류
공동체 안에서 피해자의 고통도 보듬고, 가해자의 인권도 살피는, 무엇
보다 우리 모두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이끄시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기
도가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사형제도의 법적 폐지가 모든 나라에서 이
루어지도록 기도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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