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교황 프란치스코의 2022년 3월 기도지향 성찰문
본문
교황 프란치스코의 2022년 3월 기도지향 성찰문
- 생명 윤리의 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 김우중 신부님
< 생명 윤리의 도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
생명 윤리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와 실천으
로 언제나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을 수호하도록 기도합시다.
미국에서 윤리신학 첫 수업에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회원이자
윤리신학 교수인 James F. Keenan 신부님은 윤리신학의 출발점이 무
엇인지 학생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성경, 교회법, 십계명 등 많은 생각
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상하지 못한 전혀 뜻밖의 대답을 들
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약함(vulnerability)’이었습니다. 신부님에 따르면 ‘약함’에
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약함 자체이고, 둘째는 약한 이들을 위
한 ‘약해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자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엄밀히 말하
는 약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연약한 아기로 태어나
셨고, 가장 약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약한 우리들을
위하여 당신이 스스로 ‘약해짐’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도 다른 약한 이들을 위하여 약해져야 한다는 것이 윤리신학의 출발점
이라는 말은 저에게 무척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에서 세상에서 가
장 약한 이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특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고자 하는 이 힘없는 이들 가운데는, 자신을 방어할 힘이 전혀 없
고 무죄한 태아가 있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약한 이들을 위해
세상에 오신 것처럼, 그분의 몸인 교회는 약한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을 찾아 나서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교
회의 사명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의 노력을 비웃는 태도에
대해 비판하십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이러한 수호는
그 밖의 다른 모든 인권 수호와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교
회의 이러한 노력이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된다면, “인권 수호를 위한
견실하고도 지속적인 토대도 없어져, 인간의 권리는 늘 권력자의 편의
에 번번이 휘둘릴 것”임을 교황님은 강조하십니다. (『복음의 기쁨』,
213항 참조)
교황님께서도 윤리신학이 어디로부터 출발해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2019년 2월 9일, 로마 소재 성 알폰소 대학원
(Accademia Alfonsiana-Istituto Superiore di Telolgia)의 학생들과 교수
들과의 만남에서 사랑(carita)이 교회 윤리의 가르침에서 가장 높은 가
치임을 강조하십니다.
이른바 사랑이 윤리의 시작이자 마침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약한 이들
과의 연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가장 약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인 생명을 연대와 신뢰로 우리가 책임을 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모든 생명의 무조건적인 가치에 대한 진솔한 증언이
결코 파기되지 않아야 합니다.”[1]
사랑에 기반한 약한 이들과의 연대는 때때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
다. 우리 또한 약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의 신비는 바로 ‘약해짐’에 있습니다. 약한 이들과의 연대는 그들의 상
황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늪으
로 들어가야 하듯 때로는 목숨의 위협을 감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는 우리를 위하여 죄 많은 이 세상에 오셨고, 결국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생명 수호를 위하여 힘쓸 때 우리가 직면해야 할 저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권력의지의 이데올로기”와 “시장과 기술의
확고한 지지를 이용하고 있는 유사 이데올로기”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들을 “휴머니즘을 무너뜨린 오류의 길”이라고 비판하십니다. [2]
우리가 생명 수호를 위해 가야 할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인간 생명
을 경제적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 죽음의 문화는 넓고 편한 길로 우리
를 유혹합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설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은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
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곧 사랑을 의미합니다. 사랑 때문에 약한
이들과 연대하고 생명의 수호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인간 피조물을 위한 하느님의 열정에서 솟아나오는 생명의 휴
머니즘을 강력하게 제시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든 존재의 생명
을 이해하고 증진하며 보호해야 할 책임은 이러한 하느님의 무조건적
인 사랑에서 움트는 것입니다.” [3]
· 성경 말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 성찰 질문: 나는 누구를 위해서 약해질 수 있습니까?
[1]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19-02/papa-francesco
-udienze-accademia-alfonsiana-teologia-morale.html
[2] 설립 25주년을 맞아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원장 빈첸초 팔리아
(Vincenzo Paglia) 대주교에게 보낸 프란치스코 교황의 서한 (2019),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19-01/papa-francesco
-pontifica-accademia-vita-lettera.html
[3] Loc. cit.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