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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화상입은 검은 마리아

베드로 베드로
2013-01-02 18:33 1,69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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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입은 검은 ‘마리아’, 그녀가 맨발로 간곳은…

 

조원제 의사가 열이 40.5도까지 올라 말라리아 증세가 의심되는 5살 여자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의료봉사 뛰어든 60대 의사
검은 ‘마리아’ 돌보는 한국 의사 ‘요셉’…“의술보다 사랑 더 필요”

의학도 시절 꿈 실천하러 온
세례명 ‘요셉’ 의사 조원제씨
화상 입은 여인 ‘마리아’ 치료해


베이고 기생충에 피부 뚫리고…
시설 태부족 진료소에 환자 몰려
의료도구, 압력밥솥에 소독하고
붕대도 살균 세탁해 다시 써
“보탬되어 내가 더 마음의 평화”


불덩이처럼 지글거리던 해가 아프리카 초원 뒤편으로 떨어진 밤. 간질 발작을 일으킨 마리아(32)가 하필 집 안에 피운 불 위로 쓰러졌다. 누군가에게 뭐라 소리라도 명확히 지르면 좋았으련만, 그는 말 못하는 장애마저 안고 있다. 가족이 발견해 불에서 떼어냈을 때, 이미 마리아의 얼굴 왼쪽과 어깨, 왼쪽 젖가슴이 검붉게 탄 상태였다.


지난 12월 초, 중화상을 입은 그는 맨발로 한국인 신부들이 운영하는 진료소로 걸어왔다. 마리아는 아이 셋을 낳았지만, 세살배기 아기만 엄마 곁에 홀로 살아남았다. 지금은 남편 없이 흙으로 지은 친정집에서 산다. “제때 치료하지 않았으면 2차 감염으로 생명이 위태로웠을 겁니다. 의사 선생님이 마리아를 살린 거죠.”


아프리카 남수단 시골마을 아강그리알에서 원주민과 생활하는 이상협(33) 신부가 말했다. 때마침 피부·성형전문 조원제(61) 의사가 3개월 의료봉사하러 와 있었던 것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의사로 오래 일해온 그는 이곳에 오기 직전, 충남 천안에서 근무하던 병원 일을 그만뒀다. 국내에서도 무료진료 활동을 했던 그는 “이제 자식들 결혼도 다 시켰으니,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해보자”며 짐을 꾸렸다. 의술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자던 청춘 시절 의학도의 꿈을 “더 늦기 전에 펼쳐보자”고 그는 생각했다. 환갑에 이른 그가 결단을 내렸지만 남수단에 신부를 파견한 수원교구 쪽은 “일단 3개월간 지낸 뒤 더 생활할지 판단하라”고 권했다.


“의사를 하며 하지 않았던 일들을 여기서 많이 하고 있죠.”


소독기계가 따로 없는 곳이니, 그는 의료도구들을 밥 짓는 작은 압력밥솥에 넣어 석유풍로(곤로)에서 끓여 소독한다. 물(1ℓ)에 소금(9g)을 타서 식염수도 직접 만든다. 피와 고름이 묻은 붕대도 살균 세탁해 재활용한다. 약품을 보관하는 캐비닛이 두개이고, 나무로 만든 환자용 침대가 하나뿐인 진료소엔 아픈 이들이 밀려온다. 수수와 대나무를 베다 손과 발의 피부가 깊숙이 찢어진 사내아이, 전갈과 뱀에 물린 꼬마, 귀에 구슬이 들어갔다며 빼달라는 여자 아이, 몸에서 자라난 기생충이 피부를 뚫고 나왔다는 사람, 복통과 설사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흙 묻은 얼굴로 그와 마주 앉는다. “말라리아 고열 환자도 8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찾아왔다. “(화상 피해가 가장 심한) 3도 화상이었는데, 처음에 상처 부위를 소독할 때 아프다며 몸을 심하게 흔들어 꽉 붙잡고 치료해야 할 정도였죠.”


불 위에 쓰러져 화상을 크게 입은 마리아가 붕대를 감은 채 진료소 앞 의자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저녁 6시30분까지 진료소를 열지만, 마리아가 늦게 오면 8시가 다 돼 치료를 끝내기도 한다. 날마다 상처에 고인 진물을 닦아준 뒤, 바셀린과 피부 재생 연고를 바른 흰 천(거즈)을 상처에 대고 붕대를 새로 감아준다.


그는 “이곳에선 피부 이식수술을 할 수 없으니, 마리아의 상처가 아무는 데 석달 넘게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손가락으로 복용약을 가리켜 몇 알씩 먹으라고 손짓하면, 마리아는 고갯짓으로 ‘알았다’고 침묵의 대답을 한다. 그는 “아프리카에선 외상환자가 많아 살을 꿰매는 봉합실과 국소마취제, 거즈·붕대·외상연고제·항생제 같은 약품들이 좀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1월 중순 이후 3개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한다. 아프리카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는지 점검한 기간이 끝나가는 것인데, 그는 “아프리카로 되돌아와 최소 1년을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진료소에서 통역을 돕는 이곳 학생들에게 간단한 치료법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한다. “의사가 없는 무의촌에서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진료소 벽에 “우리의 의학적 지식과 기술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니,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사랑을 베풀어달라”는 글을 붙여놓고 기도한다.


뜻밖의 인연이라 해야 할까. 그의 가톨릭 세례명은 성경에서 성모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인 ‘요셉’인데, 그는 불에 그을린 ‘남수단의 마리아’와의 만남을 통해 “돈을 벌려고 일하면서 잊고 지냈던 삶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그에게 삶의 기쁨과 의미를 깨닫게 한 마리아의 몸에서도, 화상의 상처가 약했던 부위에서부터 조금씩 새살이 올라오고 있다.


아강그리알(남수단)/


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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